마흔살, 평범한 일상 속에서 이 나이를 기억하기 위해 조그마한 목표를 세워 본다.
"한라산 백록담 정복하기"
등산을 좋아하는 편이 아니라서 자의로 등산을 해 본 기억이 거의 없다. 허약체질에 골골대는 편이지만, 그래도 올해 뭔가는 하나 남겨야 한다는 사명감이 생긴다. 그래도 우리나라에서 가장 높은 한라산을 쉽게 오르기는 힘들테니 우선 기초체력을 기르기로 했다. 2달동안 일주일에 한두번 탄천에서 5키로미터 정도씩 러닝으로 체력을 키웠다. 허벅지 근육과 심장을 단련시켜서인지 등산에 많은 도움이 되었다.
5월 어느날 수요일 하루 휴가를 쓰고 화요일 밤 비행기로 출발하여 목요일 아침 비행기로 돌아오는 일정이다. 다른 블로그 후기를 보면 당일 아침 비행기로 출발하여 당일 밤 비행기로 돌아오는 사람들도 있던데, 첫 등반이다보니 나는 조금 더 여유를 두기로 했다.
한라산 등반을 위한 게스트하우스가 몇군데 있던데, 난 편하게 혼자 자는 걸 좋아해서 호텔로 정했다. 홀몸에 등산을 위한 숙박이므로 최대한 저렴한 곳으로 찾은 곳이 R&T호텔이다. 평이 꽤 좋은 것 같아 이곳으로 2박을 예약했다. 알고보니 주변에 맛집이 많은 곳이었다. ㅎㅎ 그리고 제주공항에서 버스타고 갈 만한 위치며 버스도 많았다.
호텔은 시설이 그렇게 좋지는 않다. 딱 그 가격이라고 보면 되겠고 있을 건 다 있고, 혼자 자기에는 괜찮다.
늦은 저녁이라 근처 문이 열려있는 곤지암소머리국밥집에 들어갔는데, 내가 간 맞추기가 힘들었는지 맛은 그냥 평범하다.
드디어 한라산을 보러 가는 날이다. 아침 5시반에 기상해서 최대한 가방을 비우고 나섰다. 날씨가 흐려서 등반시 추울까봐 긴 가디건과 바람막이까지 챙겼는데 이번 등산시에는 더워서 거의 입지는 못했다. 물 2개와 이온음료 1개, 김밥, 간단히 먹을 초콜릿 등을 챙기니 가방이 묵직하다. 등산시 가방이 큰 짐이 되니 최대한 줄였어야 했다. ㅜㅜ
아침 일찍 오픈한 근처 미풍해장국집에서 아침을 먹었다. 선지(빼달라고 하면 빼줌) 해장국 스러운데 상당한 맛이다. 맛에 한번 놀라며 든든하고 먹고 이제 나섬! 이곳에서 택시타고 관음사등산입구에 도착하니 비용은 1만원 내외였다. 관음사입구로 가는 대중교통은 없는 듯하다.
블로그 후기를 보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성판악코스로 올라서 관음사 코스로 내려오더라. 아무래도 두 코스 중에서 성판악코스가 더 쉽다고 해서 그런가보다. 그런데 이번에 등산을 해 보니 관음사 코스는 볼 거리가 많고 하늘이 열려 있어서 경치를 구경하기 좋은데, 성판악 코스는 나무로 우거진 길이 대부분이라 하늘이 나무로 닫혀져 있어서 주변 경치를 보기 힘들고 주구장창 길만 보게 된다. 그래서 관음사 코스로 오르는 것을 추천한다. 내가 다음에 또 등반을 하게 된다면 관음사코스로 등/하산을 모두 하는 코스로 정할 것 같다.
이제 묵묵히 수행해야 하는 등산이 시작된다. 장장 9~10시간의 등산을 몸이 벼텨줄까라는 두려움도 있지만, 시작한다는 설레이는 기대감도 가지고 산으로 발을 옮겨 본다.
아, 그전에 정말 많은 도움이 된 등산스틱과 장갑에 감사를 표한다. 이게 없었다면 아마도 등산을 완료하지 못하고 중간에 쓰러지지 않았을까 싶다. 내 생애 다음 등산은 없다. 어쩌면 지금 딱 한번밖에 안 쓸 장비일 수도 있지만, 없었으면 큰일 날 뻔 했다. 스틱은 가성비가 좋다는 저렴한 국민 스틱으로 샀는데, 스틱 자체를 처음 사용하다보니 좋은건지 나쁜건지는 모르지만, 백록담을 보기 위해서는 꼭 필요한 장비라고 본다.
아래 사진처럼 관음사코스는 동굴이라든지, 숱가마터, 원점비 등 볼거리가 많다. 힘이라면 대부분이 계단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건데, 난 울퉁불퉁한 돌길 보다는 이런 계단이 더 편하더라.
드디어 백록담이다. 아침 7시40분에 시작하여 12시 20분에 도착. 약 4시간 40분이 걸렸다. 러닝으로 기초체력을 키워서인지 볼거리가 많아 쉬엄쉬엄 올라와서 인지 백록담까지 오르는데 크게 힘들지는 않았다. 평일인데도 역시 백록담에는 사람이 많았는데, 벌레들도 많다. 백록담에서 김밥도 먹고 좀 쉬다가 하산하려고 했는데, 벌레가 너무 많아서 도저히 쉴 수 가 없다. 내 흰 상의가 검게 될 정도로 벌레가 달라 붙는다. 백록담 꼭대기에서 모래바람이 부는데 자세히보면 그게 모래가 아니라 날파리들이다. ㅜㅜ 백록담 기념 사진을 보면 검은 점들이 많은데 저게 다 벌레들이다. 그래서 정상을 밟은 기쁨은 조금 더 내려와서 즐기기로 하고 하산하기 시작한다.
하산은 성판악 코스로 내려왔다. 관음사코스에서는 사람 보기 힘들었는데, 역시나 상판악코스는 사람들이 많다. 그리고 힘든 돌들.. 하산시 저런 돌을 잘못 밟았다가 삐끗이라도 하는 날에는 정말 힘든 하루가 되겠지..
오후 5시쯤 도착했으니, 내려오는데도 대략 4시간 반이 걸렸다. 성판악 코스의 하산길은 정말이지 힘들었다. 대부분 길이 울퉁불퉁 돌바닥에 숲으로 이루어져 있어 볼거리도 없고 내려오고 내려와도 똑같은 길이니.. 지치고 다리 힘은 빠지고 돌은 물기로 미끄럽고.. 역시나 산은 내려오는 길이 더 힘들다. 등산스틱의 도움을 많이 받아서 발이 말을 안들을려고 할 쯔음 겨우겨우 내려 왔다.
두 코스 모두 2/3 지점에 샘터가 있어서 물을 담을 수 있다. 그래서 물을 많이 안 마셔도 되는 사람은 500미리 물통 하나도 괜찮을 것 같고 나 같이 많이 마시는 사람은 2개면 될 것 같다. 다만, 표시판이 없어서 샘터가 어디에 있는지 잘 알기가 어렵다. 관음사 코스는 용진각현수교 바로 앞에 있어서 인지만 하면 찾을 수 있는데, 성판악코스에서는 찾지 못했다. 산 중간에 만나는 대피소에서 이제는 물도 판매를 안 하기 때문에 자기에 맞는 양의 물도 충분히 준비해야 한다.
오랜만에 등산을 해보니, 체력유지, 물조절, 등산스틱 사용이 제일 필요했다. 몸은 힘들지만 뿌듯한 마음을 안고 숙소로 돌아왔다. 성판악 등산입구에는 버스가 자주 다녀서 편하게 버스를 타면 된다.
숙소에서 씻고 지친 몸을 위해 조금 쉬었다가 저녁을 먹으러 나섰다. 성취감을 만끽하기 위해서는 제주도 흑돼지에 맥주 한잔이 필요하다. 근처 돈사촌에서 야외 자리에서 김치찌개와 라면사리, 고기 한점에 맥주한잔이 참 좋구나. 정말 배불리 먹고 숙면을 취함!
원래 다음날 아침은 근처 우진해장국집에서 해장국을 먹고 비행기를 탈 예정이었으나, 몸이 쑤셔오고 잠을 더 자는게 나을 것 같아서 우진해장국은 다음기회로 미뤘다.
다리가 욱신 거리는 게 3일이 더 갔다라는건 비밀이다. 등산하면서 만난 대구 고등학생들, 12살짜리 어린 친구의 대견함을 느끼며, 나에게도 뿌듯함을 선사한다. (한라산 등반이 뭐라고..ㅎㅎ) 운동기록은 사상최고를 기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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